
<로얄 어페어> 줄거리 & 결말
영화 <로얄 어페어>는 시대를 앞서간 혁명가와 그를 사랑한 왕비의 비극적인 1460일간 스캔들을 다룬 영화이다.
18세기말 유럽 전역, 귀족들은 강한 종교의 힘을 기반으로 억압적인 통치를 펼쳤다. 하지만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지식인과 자유 사상가들이 개혁과 민중의 자유를 요구하는 계몽주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하지만 북구에 있는 덴마크는 아직 절대왕정과 귀족들의 힘에 의해 통치되는 나라였다.
1766년 크리스티안 7세는 아버지가 서거하자 왕위를 물려받게 된다. 왕위를 물려받은 해에 결혼을 하게 된 크리스티안 7세의 배우자는 영국 조지 3세의 누나인 캐롤라인 마틸다.
그녀는 작은 초상화 하나만 간직한 채 크리스티안 7세와 결혼하기 위해 한번도 와보지 않은 땅 덴마크로 향한다.
조현병을 앓고 있던 크리스티안 7세는 결혼 후에도 창녀촌을 드나들며 난잡한 성생활을 이어갔고 귀족들에 의해 꼭두각시 왕으로 전락한다.
꼭두각시 왕 크리스티안 7세 앞에 독일 출신 의사 요한 스트루엔시가 나타나면서 덴마크의 역사는 요동치기 시작한다.
스트루엔시는 국왕의 주치의가 되었고 국왕은 처음부터 그를 좋아하며 그와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스트루엔시는 국왕 곁에 있으면서 점차 국정에 관여하게 되었고 백성들에게 천연두 백신을 공급하고 고문을 금지하는 등 덴마크를 개혁해 나가기 시작한다.
이런 스트루엔시를 좋아한 사람은 비단 국왕뿐만이 아니었다. 캐롤라인 왕비 역시 스트루엔시의 계몽사상과 개혁 정신에 반하게 된다.
두 사람은 서로에게 끌리게 되고 결국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어 은밀한 관계가 된다.
한편 귀족들은 스트루엔시를 등에 업은 크리스티안 7세의 개혁 정치에 반기를 든다. 그 중심에는 크리스티안 7세의 계모 율리아나 마리아가 있었다. 그녀는 자기 아들을 후계자로 삼기 위해 왕비와 스트루엔시의 뒤를 조사하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불륜 사실을 알게 된 율리아나 마리아는 귀족들과 연합해 정적들을 물리치고 정권을 잡게 된다.
이렇게 덴마크의 미래가 결정되어진다.
<로얄 어페어>의 역사적 배경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7세
18세기 말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왕이며 슐레스비히, 홀스타의 공작이다.
1749년 1월 덴마크 왕 프레데리크 5세(Frederick V)와 어머니 그레이트브리튼(Great Britain) 죠지 2세(George 2)의 딸 루이사(Louisa)의 아들로 태어났다.
1766년 1월 아버지가 서거하여 왕으로 즉위하였다.
크리스티안 7세는 재능이 있었으나 조현증으로 고통을 받았다.
1766년 11월 크리스티안보르그(Christiansborg)궁에서 그레이트브리튼(Great Britain) 죠지 3세(George 3)의 누이인 캐롤라인 마틸다(Caroline Matilda)와 결혼한 뒤 난잡한 성생활에 빠졌고, 결국 편집증과 자해 그리고 환각 상태에 빠지기도 하였다.
그의 주치의 스트루엔시가 1760년대에 실권을 갖게 되었고, 왕비 캐롤라인 마틸다와 부적절한 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로 인해 1772년 왕비와 이혼을 하고 스트루엔시는 처형당했다.
캐롤라인 마틸다 여왕과의 사이에 프레데리크 6세와 루이스 공주를 두었는데 루이스 공주는 스트루엔시의 딸이라고 알려져 있다.
1772년부터는 건강 악화로 명목상의 왕에 불과하였고, 1772년부터 1784년 사이 덴마크는 계모인 브룬스빅-울펜뷔텔의 율리아나 마리아와 장애인 처남 프레데리크 등에 의해서 통치되었다.
1784년부터 아들 프레데리크 6세가 왕자 섭정으로 통치하였고, 1808년 59세의 나이로 두뇌 동맥류로 서거하여 로스킬데 성당에 안장되었다.
프리드리히 스트루엔시
독일 할레에서 신학자이자 목사인 아버지를 둔 스트루엔시는 젊은 나이에 루소의 평등주의적, 무신론적인 사상을 받아들였다. 외과의사가 된 뒤 그는 궁정에서 추방당한 한 정치 파벌에 이끌려 덴마크로 갔다. 그들은 스트루엔시를 왕의 주치의로 삼아 조현증을 앓는 젊은 왕 크리스티안 7세를 다시 한 번 자신들의 뜻대로 휘두를 계획이었다. 스트루엔시는 왕의 정신병을 어느 정도 치유했고, 정신이 온전치 못한 왕을 좌지우지하게 되었으며, 잉글랜드 왕 조지 3세의 누이인 젊은 왕비 캐롤라인 마틸다의 연인이 되자 그의 지배력은 한층 굳어졌다.
처음에는 꼭두각시 정치인들을 통해 통치하던 그는 1770년 12월 덴마크의 절대 권력자가 되었으며, 몇 천 가지의 급진적인 개혁책을 제시했는데, 진보적인 것도 있었고, 별난 것도 있었다.
스트루엔시가 권력을 휘두르자 보수적인 덴마크 귀족층은 크게 비위가 상했고, 그와 왕비, 그리고 스트루엔시와 한편인 왕의 시종 브란트를 체포하려는 음모가 나타났다. 왕비가 루이자 아우구스타라는 딸을 낳은 것을 계기로 궁정 내에서 모반이 일어났다. 모두들 공주가 스트루엔시의 아이라고 했던 것이다. 1771년 1월 세 사람은 모두 체포되었다. 스스로 고문과 사형을 금지했었지만, 스트루엔시와 브란트는 오른손을 잘리는 벌을 받은 뒤 참수당했다.
율리아나 마리아 폰 브라운슈바이크-볼텐뷔텔(크리스티안 7세의 계모)의 대리통치
정신병에 시달리는 크리스티안 7세를 대신하기 위해서 율리아나 마리아 폰 브라운슈바이크-볼텐뷔텔은 자신의 아들이자 크리스티안 7세의 이복 동생인 프레데리크 왕자를 섭정으로 내세웠다. 실질적인 통치는 총리인 오베 회그-굴드베르가 했으며, 율리아나 마리아 폰 브라운슈바이크-볼텐뷔텔과 오베 회그-굴드베르는 보수 반동 정치를 펼치면서 귀족 특권을 부활시켰다.
댓글